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암벽 등반 (문단 편집) === 대한민국의 암벽 등반 === 18세기 말에 그려진 등암도라는 그림에 비로봉을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있다.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당시에 암벽을 타는 행위는 스포츠나 놀이가 아니라, 암벽에서 나는 물건들을 채취하기 위한 일종의 [[심마니]] 활동이었다. 한국의 근대적인 암벽 등반의 시작은 [[일제 강점기]]로 1926년 5월, 임무(林茂)와 영국의 부영사였던 클리프 아처의 [[인수봉]] 초등을 기점으로 한다. 1930년대 [[백두산]]과 [[금강산]]의 등반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[[서울]] 근교 암벽의 초등경쟁이 시작됐다. 백령회가 탄생한 것이 이 시기. 1945년 조선산악회가 탄생했고, 1948년 한국산악회로 개칭하게 된다. 하지만 정국의 혼란과 이어진 [[한국 전쟁]]으로 등반은 침체되어 있었다. 60년대에 다시 등반이 활성화 되기 시작했고, 본격적으로 수많은 루트가 개척되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에는 대학 산악회가 있었다. 70년대에는 체계적인 등반 교육을 위한 등산학교들과 연맹들이 세워 졌다. 80년대 후반부터는 장비의 대중화로 등반인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. 암벽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며, 암벽화는 화강암 슬랩위주였던 인수봉과 선인봉에서 극강의 성능을 발휘했고, 이 역시 등반인구의 급증에 기여를 하기도 했다. 90년대에는 인공 암벽을 설치한 암장이 대거 도입되고, 자연 암벽 역시 인수봉과 선인봉으로 대표되는 화강암 슬랩 위주였던 종래의 등반에서 탈피하여 [[선운산]], 간현암 등으로 대표되는 '하드 프리' 암장들이 개척되었다. 00년대 이후에는 [[스포츠 클라이밍]]이 전국 체전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. 인공암장이 늘어나면서 등반인구가 증가하고 있다. 과거 고등,대학 산악부를 통해 등반에 입문하던 것에서 벗어나 10대 초반, 그 이하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. [[시흥시]]에 국제규격에 맞는 스포츠클라이밍센터가 있으며, [[김자인]] 선수가 2010년 초부터 주목받기 시작해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리드 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활약하고 있다. [[부천시]]의 [[부천종합운동장]]에도 기존의 인공 암벽이 철거되고 국제규격에 맞는 인공 암벽이 새로 조성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